요즘 그림이 궁금해졌다. 작가가 그 그림에 무얼 표현하려고 했는지... 그 그림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그래서 찾아낸 이 책.ㅋ
너무 재밌게 하루만에 읽어버렸다.
세잔의 <부엌의 식탁>을 봤을때 그냥 평범한 정물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시각들의 조합이라 하니 너무 신기했다. 사람을 대할때나, 사물을 바라볼때 시각을 조금만 살짝 다르게 본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텐데..ㅋ
누구나 피카소의 그림은 중고등학교 다닐때 미술책에서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때 내가 본 피카소의 그림은 '이상한 그림' 이었다. 이렇게 심오한 뜻이 있을 줄이야... 입체로 보여지는것을 조합하여 평면으로 그려내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알고 보니 너무 재밌다.
로트레크의 침대에서라는 그림을 봤을 때는 평범한 부부 또는 아이들이 자는 평온한 분위기를 지니 그림이라고 생각했었다. 일에 지쳐 곯아떨어진 가난한 여인들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 소개한 많은 그림들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그림이다.
폴 세잔
P.54 <부엌의 식탁, 1888~1890>
세잔은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생각해 냈다. 탁자 위에 사과 바구니가 놓여 있다고 상상해보자. 가만히 앉아서 그 탁자를 눈높이에서 바라보면 바구니 속 사과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벌떡 일어서서 사과 바구니를 내려다보면 바구니 안의 사과가 모두 보인다. 바로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대상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자신이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만큼만 그렸고, 사람들은 그런 그림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세잔은 그림 한 장을 그리면서 그 그림 속에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의 모습과 앉아서 바라보았을 때의 모습을 모두 그려 넣었다.
...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때로는 우리가 서서 내려다보아야만 그 참모습을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반대로 때로는 낮은 자세에서 위를 올려다보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자신의 시선으로만 상대를 관찰한다. 어쩌면 세상은 모든 것을 일방적인 자신의 눈으로만 관찰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더 시끄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
세잔의 그림이 사물을 조금 다르게 보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전해 주는 많은 것들을 소중히 보듬고, 느껴 보라고 조용히 이야기하는 듯하다.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
P.57 <아비뇽의 처녀들, 1907>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게 뒷모습을 보이고 서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그린다면 분명 등과 다리 뒷부분, 팔의 뒷부분, 그리고 뒤통수만 그리게 된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 사람을 마치 주사위 평면도처럼 펼친 뒤 원하는 부분만 따와서 나열하듯 그려 놓았다.
피카소의 이런 그림은 세잔을 많이 닮았다. 가만히 앉아서는 보이지 않는 모습을 때로는 서서, 때로는 낮추어서 보고 그림을 그리던 세잔처럼 피카소는 아예 그리고자 하는 대상 뒤로 성큼성큼 몸을 움직여 관찰한 뒤 한 화면에 펼쳐 그려 넣은 것이다. 따라서 괴물 같은 얼굴로 오른쪽 귀퉁이에 앉아 있는 여자는 목이 꺾인 것이 아니라, 뒷모습과 앞모습이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이다.
...
피카소의 그림은 마치 우리에게 사람을, 아니 우리 주변의 모든것을 입체적으로 관찰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상대방을 관찰하면 우리는 그 사람의 한 면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정성을 들여 움직이면 그의 입체적인 모든 면을 관찰할 수 있다. 또 내가 그를 무조건 나쁜 사람으로 보고 절대로 내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그는 나에게 영원히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하지만 피카소처럼 한 사람의 여러 면을 다양하게 관찰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러 면을 가지고 있다. 그 모든 면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입체적으로 보는 것이다.
...
피카소가 말하는 것 같다. 사실 저 여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때로는 착하고, 때로는 모질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웃는 우리의 모습. 우리의 모습은 결코 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이 합쳐져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괴물처럼 보여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P.112 <침대에서, 1893>
로트레크는 파리의 술집에서 일하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그의 눈에는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을 살아가는 그녀들의 모습이나, 불구가 된 채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
얼핏 보면 2명의 남자가 잠든 것 같지만, 사실은 두 여자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하루 종일 술을 나르고, 술 취한 손님들을 상대하며 테이블과 바닥을 청소한 뒤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고는 잠이 들어 있다. 그런데 머리 모양이 꼭 남자 같다. 그 시절 파리에서는 여자들의 곱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드는 일이 많았다. 가난한 그녀들은 머리카락마저 잘라 팔아야 했던 것이다. 전혀 예쁘게 그리지 않은 그림이지만, 속사정을 알고 보면 그림 속 그녀들이 단잠을 푹 잤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들 정도로 애틋하다.
'책, 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의 모든 소심쟁이들에게 - 로제마리 디프카 (0) | 2010.04.06 |
---|---|
당신이 희망입니다 - 고도원 (0) | 2010.04.06 |
날마다 새롭게 일어나라 - 법상 (0) | 2010.03.08 |
버전 업 - 고이즈미 스미레 (0) | 2010.02.27 |
여자는 말하는 법으로 90% 바뀐다 - 후쿠다 다케시 (0) | 2010.02.17 |